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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조메 유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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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이조메 유메코는 일본의 배우이다. 1915년 후쿠시마현에서 태어나, 1930년 쇼치쿠 가극단에 입단하여 연극 배우로 활동을 시작했다. 1932년 영화 《좀 먹는 봄》으로 데뷔했으며, 이후 오즈 야스지로, 시미즈 히로시 등 유명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여 인기를 얻었다. 특히 1934년 영화 《우리 이웃 야에 양》에서 주연을 맡아 유명세를 떨쳤다. 1935년에는 독립 프로덕션 도쿄 발성 영화 제작소 설립에 참여, 《건배! 학생 제군》을 시작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1942년에는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 유사 마사노리와 결혼했으며, 1955년 배우 생활을 은퇴했다가 1965년 《안개의 깃발》에 출연하며 마지막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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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조메 유메코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아이조메 유메코
아이조메 유메코
출생 이름요코야마 야치요
출생일1915년 12월 25일
출생지일본 후쿠시마현 야마군 이나와시로정
사망일알 수 없음
사망 장소알 수 없음
배우자유사 마사노리 (1942년 결혼, 1975년 사별)
직업일본 영화 배우, 무대 공연자
활동 기간1930년–1955년, 1965년
자녀1명
경력
장르가극, 극영화(시대극・현대극, 무성 영화・유성 영화)
주요 작품《옆집 야에 짱》 (1934년 시마즈 야스지로)
가족
가족유사 나오코 (딸)

2. 생애

1915년 후쿠시마현 이나와시로정에서 태어났다.[3] 태어난 지 반년 만에 아버지를, 10세에는 어머니를 여의고 오빠와 함께 상경하여 아사쿠사구의 심상 소학교에 입학했다.[3] 고등 여학교를 중퇴하고 1930년 14세의 나이로 쇼치쿠 가극단에 입단하여 '메리 고 라운드'로 첫 무대에 섰고, 해적 역으로 호평을 받았다.[3] 1932년 쇼치쿠 가마타 촬영소로 이적하여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잠식되는 봄』으로 스크린 데뷔했다.[3] 데뷔 2년 후 시마즈 야스지로 감독의 『옆집의 야에짱』에 주연을 맡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1934년 교도 영화사로 이적했다.[3] 1935년 시게무네 오사무가 독립 프로덕션 도쿄 발성 영화 제작소를 설립할 때 도요다 시로, 핫타 나오유키와 함께 참여했다.[3] 『건배! 학생 제군』(1935년)을 시작으로 『울보 아이』(1938년), 『태양의 아이』(1938년)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1942년 베를린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 유사 마사노리와 결혼하여 딸 유사 나오코를 낳았다.

전후에도 안조 가문의 무도회(1947년) 등에서 활약했다. 1955년 영화계를 은퇴했으나, 1965년 쇼치쿠 영화 『안개 깃발』에 출연했다.[3] 1985년에는 『옆집의 야에짱』에 함께 출연했던 다카스기 사나에와 인터뷰를 했다.

2002년 『일본 영화 스틸집 신흥 키네마 모더니즘 편』에 자료를 제공한 이후 소식은 불명이다.

2. 1. 초기 생애

아이조메 유메코는 1915년 12월 25일 후쿠시마현 이나와시로에서 요코야마 야치요|Yokoyama Yachiyo일본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1][3] 아버지는 공무원 요코야마 지로로 아이조메가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사망했고, 어머니 히데코는 아이조메가 10세 때 사망했다.[3] 부모를 모두 잃은 아이조메는 재산을 백부에게 맡기고 오빠와 함께 도쿄로 상경하여 아사쿠사구 에이큐초 세이카심상 소학교에 입학했다.[3]

2. 2. 쇼치쿠 가극단 시절

1930년 7월, 아이조메는 쇼치쿠 가극단 뮤지컬 극단에 입단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했다.[3] 첫 무대는 'merry-go-round'라는 연극이었고, 해적 역으로 절찬을 받았다.[3] 1932년 2월 1일, 키도 시로는 신시대 여성 영화의 희망으로 아이조메를 쇼치쿠 가마타로 데려왔고, 기쿠치 칸 원작,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좀먹는 봄』에서 같은 쇼치쿠 가극단 후배 미즈쿠보 스미코와 함께 스크린 데뷔를 했다.[3] 그러나 이 영화는 현재 유실된 작품으로 간주된다.

미즈쿠보가 먼저 인기 배우가 되었지만, 아이조메는 데뷔 2년 후 시마즈 야스지로 감독의 『옆집 야에짱』에 주연을 맡아 단숨에 인기 배우 반열에 올랐다. 아이조메는 모던파의 희망으로서 많은 작품에 주연을 맡았고, 모던파 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였다.

2. 3. 영화 배우 데뷔 및 전성기

1930년 7월, 아이조메는 쇼치쿠 가극단에 입단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첫 역할은 'merry-go-round'라는 연극에서 해적이었다.[3] 1932년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영화 ''Moth-eaten Spring영어''(잠식되는 봄)으로 스크린 데뷔를 했지만, 현재는 유실된 작품으로 간주된다.[3] 1933년 초,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태풍의 딸''에 출연했고, 이후 시미즈 히로시 감독의 ''항구의 일본 소녀들''에서 주인공의 친구이자 매춘부인 마스미 역을 맡았다. 1934년에는 오즈의 영화 ''어머니는 사랑해야 해''에 출연했고, 같은 해 시마즈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 ''옆집 야에 짱''에서 오카다 요시코와 함께 주연을 맡아 주인공 야에코 역을 연기했다.[3]
『옆집 야에 짱』 스틸 사진. 왼쪽이 아이조메 유메코. 오른쪽은 다카스기 사나에
『영화 정보』 1934년 8월호


아이조메는 모던파의 희망으로서 많은 작품에 주연을 맡았고, 모던파 중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존재였다. 1930년대1940년대에 나루세 미키오, 시미즈 히로시, 고쇼 헤이노스케 감독의 영화를 포함하여 더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1947년에는 하라 세츠코가 연기한 캐릭터의 여동생 역할을 ''안조가의 무도회''에서 맡았다. 1953년에는 ''에피토메''에서 단역을 맡았다. 1955년에 배우 생활을 은퇴했지만, 1965년 야마다 요지 감독의 ''안개의 깃발''에 출연하며 마지막으로 영화에 모습을 드러냈다.[3]

1935년, 시게무네 오사무가 독립 프로덕션 도쿄 발성 영화 제작소를 설립함에 따라 아이조메에게도 전기가 찾아왔다. 아이조메는 쇼치쿠 가마타에서 썩어가던 도요다 시로나 핫타 나오유키와 함께 설립에 참여했다.[3] 『건배! 학생 제군』(1935년)을 시작으로,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1938년에는 하야시 후미코 원작의 『울보 아이』, 마후네 유타카 원작의 『태양의 아이』와 같은 수작에 주연을 맡아 아이조메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화복 전편』 1937년 '''아이조메 유메코''' (왼쪽), 이리에 다카코

2. 4. 도쿄 발성 영화 제작소 시절

1935년, 시게무네 오사무가 독립 프로덕션 도쿄 발성 영화 제작소를 설립하면서 아이조메 유메코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아이조메는 이 독립 프로덕션 설립 제안을 받고, 쇼치쿠 가마타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도요다 시로와 시나리오 작가로 명성이 높았던 핫타 나오유키와 함께 설립에 참여했다.[3] 도쿄 발성 영화 제작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건배! 학생 제군(1935년)을 시작으로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1938년에는 하야시 후미코 원작의 『울보 아이』, 마후네 유타카 원작의 『태양의 아이』와 같은 수작에 주연을 맡아 전성기를 맞이했다.

  • 건배! 학생 제군 (1935년) - 도쿄 발성 설립 첫 작품
  • 한 자루 칼 씨름 (1936년)
  • 화복 (1937년 P.C.L 작품)

  • 울보 소년 (1938년)
  • 태양의 아이 (1938년)

2. 5. 결혼 및 전후 활동

1942년, 아이조메는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 유사 마사노리와 결혼했다.[2] 결혼 후 성은 유사 야치요(遊佐 八千代)가 되었다. 슬하에 딸 유사 마코토(1942년 2월 28일 출생)를 두었으며, 딸은 유사 나오코(遊佐 ナオ子)라는 예명으로 배우가 되었다.[2]

전후에도 아이조메는 배우 활동을 활발히 이어갔다. 1947년에는 몰락해가는 화족의 모습을 그린 안조 가문의 무도회에서 하라 세츠코, 모리 마사유키의 누나 역을 맡아 강한 인상을 남겼다.

1955년에 영화계를 은퇴했지만, 1965년에는 야마다 요지 감독의 쇼치쿠 영화 안개 깃발에 출연하여 다시 한번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냈다.[2]

2. 6. 은퇴 및 이후

1955년에 배우 생활을 은퇴했지만, 1965년 야마다 요지 감독의 영화 《안개 깃발》에 출연하며 마지막으로 영화에 모습을 드러냈다.[3]

1985년에는 《옆집의 야에짱》에 함께 출연했던 다카스기 사나에와 함께 인터뷰를 했다. 2002년 일본 모더니즘 영화에 관한 책에 자료를 제공하면서 마지막으로 소식이 전해졌다.[2]

3. 주요 출연 작품


  • 좀먹는 봄 (1932년) - 데뷔작, 사운드판[2]
  • 백야는 밝아온다 (1932년) - 무성
  • 호토토기스 (1932년) - 무성
  • 비상선의 여자 (1933년) - 무성
  • 대학의 젊은 도련님 (1933년) - 무성
  • 드래그넷 걸 (1933년) - 미사코 역
  • 항구의 일본 소녀들 (1933년) - 마스미 역[2]
  • 동양의 어머니 (1934년)
  • 어머니를 그리워하지 않으랴 (1934년) - 무성
  • 어머니는 사랑해야 한다 (1934년) - 미츠코 역[2]
  • 우리 이웃 야에 양 (1934년) - 야에코 역[2]

  • 거리의 폭풍 (1934년) - 사운드판
  • 다정불심 (1934년)
  • 내가 시집을 간다면 (1935년)
  • 일상월상 (1935년)
  • 세 개의 진주 (1935년) - 무성
  • 건배! 학생 제군 (1935년) - 도쿄 발성 설립 첫 작품
  • 한 자루 칼 씨름 (1936년)
  • 화복 (1937년 P.C.L 작품)

  • 울보 소년 (1938년)
  • 태양의 아이 (1938년)
  • 응원가 (1938년)
  • 인처 진주 (1938년)
  • 아시아의 딸 (1938년)
  • 일본의 혼 (1938년)
  • 평판 다섯 아가씨 (1939년)
  • 태평양 행진곡 (1940년)
  • 국성야합전 (1940년)
  • 왕도란의 탄식 (1940년)
  • 초봄 아가씨 (1940년)
  • 북극광 (1941년)
  • 폭풍 속의 소녀 (1941년)
  • 추억의 기록 (1942년)
  • 노예선 (19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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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해 수호전 (1945년)
  • 그와 그녀는 간다 (1946년)
  • 안조가의 무도회 (1947년) - 아키코 안조 역[2]
  • 종소리가 울리는 언덕 제3편 쿠로의 권 사사키 게이스케 (1949년)
  • 괴기 흑묘조 제1부 운무 선인의 권 (1955년)
  • 괴기 흑묘조 제2부 백광 비검의 권 (1955년)
  • 괴기 흑묘조 제3부 흑묘 변화의 권 (1955년)
  • 안개 깃발 (1965년) - 오츠카 요시코 역[2]

4. 관련 서적


  • 日本映画スチル集 新興キネマ・モダニズム篇|니혼 에이가 스치루슈 신코 키네마 모더니즈무 헨|일본 영화 스틸집 신흥 키네마 모더니즘 편일본어(타치바나 타다오/편저, 와이즈 출판, 2002년 1월) ISBN 4898301274

참조

[1] 서적 Nihon eiga haiyū zenshū: Joyū hen Kinema Junpo
[2] 서적 日本映画スチール集 新興キネマ モダニズム篇 ワイズ出版
[3] 간행물 大日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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